등록일: 2016-07-21 16:20:08 카테고리: 기획취재

기획) 한국 프로레슬링의 인물들

 

한국에서 프로레슬링 분야는 야구나 축구 같은 분야와 비교해 볼 때 아직도 소위 말하는 서브 컬쳐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프로레슬링에 애착을 갖고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신 분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한국의 프로레슬링 매니아 그룹이 형성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기획 취재를 통해서 프로레슬링에 애착을 갖고 활동하시는 분들을 새롭게 조명하고, 본 작업을 통해서 한국의 프로레슬링 매니아 그룹이 더욱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1) 김종왕 선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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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왕 선수는 90년대 중반에 프로레슬링에 데뷔했고, 일본 대일본과 판크라스에서 활약한 국내 1세대 격투가 겸 프로레슬러 입니다. 이후 김종왕 선수는 스피릿 MC, 글레디에이터 FC, K-1 히어로즈 등 다양한 격투 단체에서 활약했으며, 우리에게 유명한 “비스트” 밥샙과도 경기를 가진 적이 있습니다. 2008년 열린 NWA-TNA와 신한국 프로레슬링의 합동 대회에서 이수일 선수와 팀을 맺어, 세이야 사나다, 카이 선수를 상대로 태그팀 경기를 가졌고, 2009년에 열린 김일 선생님 추모대회에서는 홍상진 선수와 팀을 맺어, 케니 러쉬, 레더 페이스 팀을 상대로 승리해 WWA 태그팀 챔피언에 등극하기도 했습니다.

 

작년에 있었던 이왕표 선생님의 은퇴식에서 WWA 태그팀 챔피언 방어에 성공한 김종왕 선수는 최근까지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꽃아재 프로레슬러 중 한명입니다.

 

프로레슬링 팟캐스트 레디투럼블((http://www.podbbang.com/ch/7931)은 1세대 격투가이자 프로레슬러인 김종왕 선수를 단독 인터뷰하게 되었습니다.

 

 

2) 김종왕 선수 이력

 

출생: 1974년 4월 8일, 서울특별시

신체: 185cm, 120kg

학력: 용인대학교 유도학과 학사

데뷔: 1993년 프로레슬링 WWA 데뷔

1996년 일본 이종격투기 판크라스 데뷔

 

 

3) 김종왕 선수와 단독 인터뷰

 

레투럼: 안녕하세요.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김종왕 선수의 간단한 자기소개를(자기소개 및 근황) 부탁드립니다.

 

김종왕: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프로레슬러 김종왕입니다. 저는 현역 프로레슬러 중에서는 (잠정 은퇴한 선수들을 제외하고는) 가장 고참급인 레슬러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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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투럼: 김종왕 선수는 프로레슬러이자 격투가로 잘 알려져 있는데, 어떤 것을 먼저 시작했고, 어떻게 컴뱃(격투) 스포츠 입문하게 되었습니까?

 

김종왕: 프로레슬링을 먼저 했습니다. 1992년에 프로레슬링에 입문하여, 연습생 생활을 하다가 1993년 3월에 데뷔를 했고요. 당시 있었던 한국 프로레슬링 흥업, 신한국 프로레슬링, 월드 프로레슬링 등에서 활동하다가 방출이 되어 일본에 가서 격투기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한국 프로레슬링 흥업이 문을 닫는 바람에 링에 설 수 없었고, 일본에 있는 지인의 소개를 받아 판크라스에서 격투기를 시작했습니다.

 

프로레슬링에 입문한 계기는 유도 체육관 다닐 때에 당시 운동을 하러 온 안재홍 선수를 만나게 되면서 부터였습니다. 친하게 지내던 프로레슬러였던 안재홍 선수가 밥 먹자고 하고 만나러 간 자리에 이왕표 회장님이 계셨고, 그 자리에서 바로 스카웃이 되어 얼떨결에 프로레슬링에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일본 판크라스에 처음 입문했을 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갔다가 스파링을 하는 것을 보고 조금 겁이 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해보고 싶다는 열정이 있어 격투가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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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투럼: 김종왕 선수의 첫 데뷔 경기는 언제였나요? 당시 느꼈던 기분은?

 

김종왕: 6개월 정도 연습생 생활을 하고 데뷔 경기를 가졌습니다. 당시 2미터가 넘는 서찬호 선수와 데뷔 경기를 가졌는데, 처음 30초 동안은 아무것도 안 보였고 그 뒤에는 긴장을 해서 너무나도 힘들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5분 30초 정도 경기를 가졌는데, 마치 5시간 30분을 경기한 것처럼 힘들었습니다. 제가 배웠던 유도와는 너무 많이 틀렸고, 저보다 20cm 가량 큰 선수를 상대하는 것에 부담이 컸습니다.

 

선수 생활 중에 NOW라는 일본 프로레슬링 단체의 겐토 나가사키 회장이 저를 스카웃하려고도 했지만, 비자를 받지 못해 일본으로 가지는 못했었습니다. 그때는 군대를 가기 전에는 여권조차 나오지 않았으니까요. 군대를 다녀오고, 겐토 나가사키 회장이 만든 대일본 프로레슬링에서 몇 번 경기를 가지기도 했었습니다. 일본에서는 홍상진 선수와 함께 프로레슬러 생활을 해서 크게 힘들지는 않았었습니다.

 

 

레투럼: 김종왕 선수의 피니쉬가 파워밤과 익스플로이더라고 알려져 있는데, 피니쉬 기술로 사용하게 된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김종왕: 피니쉬는 파워밤하고 타이거 드라이버가 맞습니다. 익스플로이더도 가끔씩 사용하기도 합니다. 타이거 드라이버는 다른 선수들이 구현하기 힘든 기술이고, 파워밤 같은 경우는 저보다 작은 선수들에게 힘을 과시하는 모습을 잘 보여줄 수 있어 피니쉬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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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투럼: 김종왕 선수가 프로레슬링과 격투기를 병행하면서 힘든 점은 없는지, 혹은 두 장르를 비교해주신다면?

 

김종왕: 격투기는 오랜 기간 몸을 만들고, 경기에 나서기 위해 준비해야 하는 반면에 프로레슬링은 준비의 기간이 짧지는 않지만, 링에 서는 순간부터 점점 성장해나가는 스포츠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프로레슬링을 완성하려면 적어도 10년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프로레슬링은 링 위에서 하는 행위예술이지만, 그 위험과 고통은 진짜입니다. 링 위에서 사람들에게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동시에 빈틈없는 운동 능력 역시 필요하기 때문에 더욱이 완숙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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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투럼: 김종왕 선수가 선수 생활을 하면서 가장 즐거웠던 일과 안타까웠던 일은 언제였나요?

 

김종왕: 아무래도 프로레슬링 선수라는 직업만으로 생활이 안 된다는 것이 가장 안타까운 일입니다. 1년에 1-2회 하는 프로레슬링 대회로 선수 생활을 이어나가는 것은 불가능하죠.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다른 스포츠에 비해 떨어진다는 것 역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때문에 후배 선수들을 양성할 수 있는 기반도 되어있지 않고요.

 

프로레슬링을 하면서 팬 분들의 응원을 받았을 때와, 지금까지도 알아봐주시는 분들이 계신다는 것이 행복한 일들입니다. 제 또래 친구들이나 어르신 분들은 여전히 프로레슬링 경기를 좋은 추억으로 가지고 있고, 또 보고 싶어 합니다.

 

 

레투럼: 김종왕 선수의 별명은 “마왕”으로 유명했는데, 마왕으로 불리게 된 사연이 있습니까?

 

김종왕: 스피릿 MC 활동 시절에 격투기 전담 기자 분께서 “마왕”이라는 별명 어떠냐고 물어봤고, “나는 교회 다니는 사람인데 어떻게 마왕이라는 이름을 쓰냐?”라고 반대했었죠. 하지만 기자님께서 “김종왕 선수를 당해낼 선수가 없을 것 같으니, 마왕이라는 별명이 딱 어울린다.”라는 말로 설득해, 결국 그렇게 언론에 소개되기 시작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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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투럼: 김종왕 선수 자신이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 3가지를 꼽는다면?

 

김종왕: 프로레슬링 같은 경우는 2009년에 홍상진 선수와 함께 WWA 태그팀 챔피언에 등극했을 때입니다. 당시 경기가 프로레슬링에 복귀하고 가진 큰 시합이었는데, 다시 예전과 같은 프로레슬링에 대한 팬들의 관심을 이끌 수 있으리라 생각하기도 했었습니다.

 

격투기같은 경우는 미국 킹 오브 더 케이지에서 동양인 최초로 출전해 승리한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 손가락이 부러지는 부상을 입기도 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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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한 경기는 밥샙에게 8초 만에 패배한 것입니다. 이제야 하는 이야기이지만 당시 패배는 기권이 아니라 판단미스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196cm, 170kg의 밥샙은 정말 괴수 그 자체였고, 밀고 들어오는 것은 트럭, 원투 펀치는 벽돌을 얻어맞는 것처럼 충격이 굉장했습니다. 거기서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은 밥샙이 상위 포지션을 점하기 전에 링 밖으로 빠져나와 스탠드업하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링 밖으로 나오면 페널티가 출전 개런티에서 20%가 삭감되는데, 그걸 감안하고서도 불리한 포지션에서 빠져나오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심판만 심판이 경기를 중지시키고 8초 만에 패배가 선언되었어요. 이제 와서 변명하는 것 같지만, 제 엄청난 판단미스였던 것이죠.

 

경기에 대한 준비도 부족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주최 측에서 밥샙의 상대를 구하지 못해 도와달라는 식으로 요청이 왔고, 당시 격투기 체육관을 운영하던 저는 한번 해보겠다는 답변을 드렸어요. 당시에는 체육관에서 선수들을 가르치는 위치에 있었고 경기를 준비한 기간은 20일도 채 안되었었습니다.

 

 

레투럼: 밥샙에게 패배하고 나서 불명예스럽게 격투기 무대를 떠났고, 운영하시던 체육관도 문을 닫는 등, 힘든 일들이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김종왕: 당시 패배하고 난 직후에 제가 운영하던 체육관의 홈페이지가 욕으로 도배되고, 서버가 다운이 되었죠. 그리고 다음날부터는 북적북적하던 체육관에 관원들이 줄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하루, 이틀, 일주일 되니까 관원이 90명에서 4명으로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저는 당시 인터넷에서 저에게 그렇게 관심이 많은지도 잘 몰랐고, 이렇게 큰 후폭풍이 올지도 몰랐습니다. 모든 것이 한 번에 무너져버리는 기분이었죠. 그렇게 멍하니 시간을 지내다가 체육관 옥상에 올라서서 나쁜 마음을 먹기도 했었습니다. 옥상에서 밑을 바라보는데 너무나 편안하고 저기 뛰어내리면 모든 것이 편안해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죠. 당시 제 딸이 3살이었는데, 딸을 생각하며 그러면 안 되겠다고 마음을 다시 잡았어요. 그리고 체육관이 결국 문을 닫았고, 매일 술을 먹고, 가족들 몰래 울기도 했었고, 힘든 날들이 많았습니다.

 

한 번의 오판으로 모든 것을 잃게 되었죠. 당시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경기를 수락했고, 밥샙하고 경기만 잘 했어도 K1과 계약하기로 이야기도 되어 있었고요. 결국 경기도 정면승부를 하지 않고 그런 방법을 쓰다가 패배했어요. 결국 그렇게 쉽게 가려고 했던 것이 저에게 모두 악재가 되어 돌아온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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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투럼: 격투기를 떠나서 그럼 어떤 일을 하셨고 어떻게 악재들을 극복했나요?

 

김종왕: 그 이후에 노점상도 해보고, 보험설계사도 해보고 여러 가지 일들을 해보았는데요. 그러는 와중에도 국내 단체는 물론, 일본 단체에서도 꽤 제안이 들어왔었어요. 한국에서는 팔종왕이라며 조롱거리가 되었어도, 격투기계나 해외 관계자들은 그 경기에 대해 이해하고 있었죠. 그런 제안들이 계속해서 왔지만 극복하고 링에 다시 서게 될 때까지는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어요. 그리고 당시에는 제 입장을 대변해줄 수 있는 언론도 없었고, 그냥 혼자 끙끙 앓는 수준이었죠. 인터넷에서는 제가 경기 당일에 술을 먹고 패배했다는 식의 말도 안 되는 소문도 있었고요. 하지만 저에게 거는 기대나 관심이 컸기 때문에 그런 비난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제가 감내해야할 부분이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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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투럼: 김종왕 선수는 WWA 현 태그팀 챔피언으로 활약 중이신데, 파트너이신 홍상진 선수와는 자주 연락을 하는지? 홍상진 선수의 근황도 궁금합니다.

 

김종왕: 태그팀 파트너인 홍상진 선수와는 친하지만 각자 직장이 있고, 사는 곳도 멀어서 대회가 있는 날에 만납니다. 1년에 1-2번 정도이죠. 2009년에 태그팀 챔피언이 되었는데, 7년 정도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네요.

 

 

레투럼: 김종왕 선수를 존경하는 후배 선수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김종왕: 젊은 선수들이 끓는 열정을 가지고 있지만, 대회가 적어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현실은 무척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런 것들을 제가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제가 나서서 젊은 선수들을 이끌어주고 싶어요. 제가 약속은 못하지만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이번 8월에 조경호 선수가 전일본 대회에 참가하는데, 일본이라고 주눅 들지 말고 멋있게 경기하고 오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어요.

 

 

레투럼: 김종왕 선수의 꿈, 비전, 향후 계획 같은 것들에 대해서 설명해 주세요.

 

김종왕: 제 꿈은 프로레슬링을 활성화시키는 것인데, 1년에 60 시합 정도하는 것이 구체적인 꿈입니다. 비전은 젊은 선수들을 키워야 하는 것인데, 그렇게 잘 키워내서 국내 탑 5 스포츠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프로레슬링과 관련된 사업을 조금 더 구체화 시키고도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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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투럼: 김종왕 선수를 지켜보는 프로레슬링 팬 분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씀해 주세요.

 

김종왕: 저한테 팔종왕이라고 약 올리고 해도... 되는 것은 아닌데, 적어도 프로레슬링 대회에서는 그러지 말아주세요. (웃음) 우리 국내에 있는 프로레슬링 선수들이 많이 노력하고 있는데, 작은 경기장, 열악한 환경에서 노력하는 그런 선수들에게 서커스네, 가짜네 하는 조롱보다는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그 선수들이 흘리는 땀과 열정을 믿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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