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일: 2014-02-08 18:23:51 카테고리: 기획취재

기획) 한국 프로레슬링의 인물들

 

한국에서 프로레슬링 분야는 야구나 축구 같은 분야와 비교해 볼 때 아직도 소위 말하는 서브 컬쳐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프로레슬링에 애착을 갖고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신 분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한국의 프로레슬링 매니아 그룹이 형성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기획 취재를 통해서 프로레슬링에 애착을 갖고 활동하시는 분들을 새롭게 조명하고, 본 작업을 통해서 한국의 프로레슬링 매니아 그룹이 더욱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1) 한국 프로레슬링 단체: PWF (프로레슬링 피트)

 

 

프로레슬링 피트의 로고

 

국내에는 그동안 몇몇의 프로레슬링 단체가 설립되고 운영을 중단하기도 했습니다.  2011년 8월에 설립된 프로레슬링 피트(이하 PWF)는 올해부터 일산에 있는 체육관에서 공개 트레이닝을 시작했으며,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기도 합니다. PWF는 현재 국내에서 있어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단체 중 하나입니다.

 

프로레슬링 피트의 이름의 의미는 “프로레슬링에 딱 맞는 회사가 되자“ 라는 의미로 지었으며, 현재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의 플로리다에도 존재하는 인디 단체입니다.

 

 

PWF 드림하우스 정문

 

현재는 일산의 PWF 드림 하우스에서 단체장인 김남석 선수가 주 2회 공개 훈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페이스북을 통해 SNS 활동을 병행하기 때문에 PWF에는 미군 부대 출신 및 외국 유학생 등 다국적 선수들도 수련생으로 있다고 합니다. 레슬매니아 닷넷은 PWF의 대표이자 현 PWF 챔피언인 김남석 선수와 단독 인터뷰 및 공개연습 취재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2) 김남석 선수의 간단한 약력

 

이름: 김남석 (29)
2004년 한국 프로레슬링 단체 WWA 데뷔 (vs. 이예성)
2008년 일본 카이엔타이 도조 데뷔 (vs. 타카 미치노쿠)
2011년 프로레슬링 피트(PWF) 설립
(현) PWF 프로레슬링 대표
(현) PWF 프로레슬링 챔피언
홈페이지: http://www.pwf.kr
페이스북: http://www.facebook.com/monzkid

 

 

3) 김남석 선수 단독 인터뷰

 

WManiac: 안녕하세요.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김남석 선수의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김남석: 안녕하세요. 프로레슬링 피트를 이끌고 있는 “닥터 몬즈” 김남석 입니다. 최근 “몬즈 키드”라는 닉네임을 “닥터 몬즈”로 변경하였는데, 현재 수련생들을 훈련시키고 단체를 이끌어나가는 역할에 현재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변경하게 되었습니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김남석 선수


WManiac: 김남석 선수는 어떠한 계기로 프로레슬링에 입문하게 되신 것인가요?

 

김남석: 저는 어린 시절 쭉 불행했습니다. 여러 가지 상황이 안 좋았죠. 어린 시절에는 태권도와 유도 같은 운동을 하기도 했지만, 17살 때 가정의 불화가 생기면서 운동도 그만두고 점점 삐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학교를 그만두고 소위 말하는 불량 청소년으로 싸움도 많이 하고 학생들 돈도 뺏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희망 없고 어두운 나날을 보내는 중 당시 인천방송에서 중계를 하던 WCW 나이트로에 푹 빠지게 되었습니다. 레슬러들은 자신들의 강인한 육체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데, 남들보다 힘이 쌔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괴롭히는 제 자신에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도 그들과 같이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감동을 주기 위해 프로레슬러가 되겠다는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유명했던 프로레슬링 사이트 “최승모의 WWF 레슬링”에 들어가 정보를 얻기도 하고 질문도 하여 이왕표 선생님이 운영하시던 격기도 체육관에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WManiac: 격기도 체육관에서의 생활은 어땠었나요?

 

김남석: 18살 때부터 격기도 체육관에서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대부분 관절기와 호신술 위주로 수련을 했고요. 당시 훈련이 너무 힘들어서 초기에 9명이 입문했다가 3명만 남고 그런 일도 비일비재 했었죠. 그러다가 2년 후인 20살 때 프로레슬링에 본격적으로 입문하게 됩니다. 주로 노지심 선생님께서 저를 맡아 훈련시켜 주셨습니다.

 


WManiac: 꿈에 그리던 프로레슬러가 되었는데, 얼마 안 되어서 WWA를 탈단 하셨는데요. 어떤 이유라도 있었나요?

 

김남석: 프로레슬러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훈련에 임했고, 데뷔를 했지만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습니다. 프로레슬러라는 꿈은 이루었으나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쳤습니다.

 

 

 

치바현에 있는 블루 필드


WManiac: 그럼 그 뒤에 일본으로 건너가신건가요?
 
김남석: 2005년 최태산 선생님의 AWF에서 잠시 훈련을 받았고, 그 뒤에 일본으로 건너가 치바현에 있는 카이엔타이 도조(=블루필드)에 입문했습니다. 조금 더 실력을 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타카 미치노쿠가 이끄는 카이엔타이 도조

 

WManiac: 도장에서의 생활은 어땠습니까?

 

김남석: 생각했던 것보다 한국인에 대한 차별이 컸습니다. 일부 동료들은 독도 문제나 피겨 스케이팅의 김연아 선수에 대한 비난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타카 미치노쿠 선생님은 저에게 각별히 대해 주셨는데, 한국에서 온 어린 선수가 총애를 받는 것에 시기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카이엔타이 도조는 선수 육성 시스템이 매우 훌륭하게 짜여져 있었습니다. 일본에서 보기 드물게 WWE 스타일이 녹아있는 단체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WWE에서 일본에서 유심 있게 지켜보는 도장 중 하나입니다. 작년에 텐사이의 매니져로 나왔던 사카모토 역시 카이엔타이 도조 출신인데 그와 함께 생활한 적도 있습니다.

 

 

이런 느낌?


WManiac: 몬즈키드라는 닉네임을 일본에서 사용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어떤 뜻이 담겨져 있나요?

 

김남석: 2003년 겨울에 WWE 스맥다운! 로스터가 한국 투어를 온 적이 있는데, 브록 레스너를 직접 본 적이 있습니다. 당시 WWA에 소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국내 레슬링 관련 인사와 조우하는 장면을 옆에서 지켜보기도 했는데, 그의 피지컬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습니다. 저런 괴물에 비해 저는 그냥 “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몬즈 키드”라는 비교적 귀여운 별명을 갖게 되었습니다.

 

 

치카라 프로레슬링


WManiac: 일본 레슬링 유학 생활을 끝내고 미국으로도 가셨었죠?

 

김남석: 미국에서 3개월동안 약 4-5 곳의 단체를 견학했습니다. 가장 인지도가 높은 치카라 같은 단체를 포함해서요.

 

 

알 스노우와 몬즈키드


WManiac: 미국 생활 중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김남석: 단체들을 견학하면서 현재 WWE 로스터에서 활동 중인 안토니오 세자로와 함께 연습을 하기도 했습니다. 프로레슬러는 한번 잡아보면 이 사람이 어느 정도의 레벨인줄 감이 오는데, 세자로는 그립 순간의 느낌부터가 틀렸습니다. 지금 WWE에서 경기하는 것을 보면 많이 기술이 WWE 화 되어있지만, 그 클래스는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프로레슬링의 고장인 필라델피아의 인디 쇼에서 조경호 선수와 오프닝 매치를 갖기도 했는데요. 당일 메인 이벤트 경기를 앞두고 있는 알 스노우를 백스테이지에서 만났습니다. 처음에는 저를 일본 선수로 알았지만, 한국 선수임을 알고 매우 놀라워하더군요. 그리고 저에게 좋은 타격감이 있기 때문에 열심히 하라는 칭찬도 남겨주셨습니다.

 


WManiac: 귀국 후에 2011년에 프로레슬링 피트라는 단체를 설립했는데 어떤 동기가 있었나요?

 

김남석: 항상 한국에서 한국인이 보여주는 최고의 프로레슬링을 하고 싶었습니다. 때문에 세계 레벨이 되고 싶어 초대 WWE 라이트 헤비웨이트 챔피언이기도 했던 타카 미치노쿠 선생님의 도장에서 훈련도 했고요. 일본에서 유명한 레슬러가 된 후에 한국으로 돌아와 큰 프로레슬링 회사를 차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일본 생활 중에 한국인으로서 당하는 차별과 정신적 괴롭힘을 견디지 못했고, 다시 한국에 돌아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치카라 프로레슬링을 견학하고 돌아와 큰 용기가 생겼습니다. 미국과 일본의 시스템을 보고 국내에 선진 시스템을 도입하고도 싶었고요. 첫 번째 계기라고 한다면 일본 동료 선수의 괴롭힘이 될 수도 있겠네요(웃음)

 

 
스승 타카 미치노쿠 선수와 함께

 

WManiac: 프로레슬링 선수로 활동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김남석: 일본 카이엔타이 도조에서 데뷔했을 때입니다. 데뷔전 상대로는 드물게 단체의 탑인 타카 미치노쿠 선생님이 상대로 나와 주셨는데요. 경기가 끝나고 역시 최고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습니다. 그날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 타카 선생님께서 경기가 끝나고 악수를 청했지만 제가 정신이 없는 바람에 사람들에게 인사만 드리고 떠났다고 하네요. 지금도 그 영상을 본다면 사람들이 막 웃어요.

 

그리고 단체를 운영하면서는 PWF 드림하우스가 완공되었을 때입니다. 프로레슬링 링에 익숙하지 못한 링 제작사가 실패를 하면서 수 천만원을 날리는 헤프닝도 있었고요. 제가 직접 설계에 손을 대면서 결국에는 완공이 되었고, 그러한 시행착오 과정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이 너무 행복합니다. 열심히 훈련에 임하는 수련생들을 볼  때마다 느끼죠. 매일 매일이 최고라고나 할까요.

 

 

 
수천만원이 들어간 PWF 링 제작

 

 

WManiac: 그럼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어느 때 입니까?

 

김남석: 힘든 일은 그때 다 잊어버리는 성격입니다. 일일이 기억한다면 너무 힘들어서 다 포기했을지도 모르겠네요. 프로레슬링에 데뷔하고 현실의 벽에 부딪쳤을 때와 링 제작한다고 거금의 돈을 날린 것이 가장 힘들기도 했습니다.

 


WManiac: 김남석 선수의 인생의 전환점(터닝포인트)가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김남석: 프로레슬링을 만났을 때가 제 인생의 터닝 포인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프로레슬링을 만나고 제 인생의 모든 것은 프로레슬링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원래 사람 만나고 함께 무언가를 하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인데, 레슬러가 되면서 술도 끊어야 했고 사람들도 만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여가 시간은 거의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평일에는 또 다른 업무를 보고, 주말에는 선수들 훈련, 그 와중에도 틈틈이 기능성 트레이닝 코치 자격증과 일본어 공부 등을 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곳에 한눈 팔 시간이 없네요. 프로레슬링을 만났기 때문에 제 인생은 이렇게 모두 변했습니다.

 


WManiac: 김남석 선수가 지금까지 가졌던 경기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가 있다면 어떤 경기였습니까?

 

김남석: 모든 레슬러들에게 그렇듯이 2004년 6월 14일에 있었던 이예성 선수와의 WWA 데뷔 경기였습니다. 시합이 끝나고 칭찬을 많이 받았었습니다. 특히 김일 선생님께서 칭찬을 하셨을 때 정말 많이 기뻤죠. 제가 눈물이 많은 편인데, 그때도 많이 울었습니다. 김일 선생님께서 편찮으셨을 때 병문안을 드리기도 했는데, 그때 선생님께서 국내 보다는 외국에 나가서 경력을 쌓으라는 말씀이 계기가 되어 해외로도 진출했고요. 타카 미치노쿠 선생님과의 경기도 그랬고, 자신이 동경하고 존경하는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다면 그 기억이 평생을 가는 것 같아요. 아직도 그분들의 격려는 제 삶의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나는 레슬러다!

 

WManiac: 팟 캐스트를 통해 “나는 레슬러다!”라는 방송을 하시기도 했는데. 방송에 대한 컨셉이나 하게 된 동기가 있나요?

 

김남석: 프로레슬링을 알리고 싶어서였어요. 일반인들도 들을 수 있게 프로레슬링에 대한 이야기를 굉장히 가볍게 풀어가고 잡담도 많이 했죠. 원래 그렇게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시작한 방송인데 첫 주에만 200 다운로드, 시작하지 몇 개월 안 되서 최고 3만 다운로드까지 기록했어요. 스포츠 부분에서 1위를 찍은 적도 있고요. 컨셉은 프로레슬링을 좋아하는 3남자(김남석 선수, 양성욱님, 래퍼 라마님)의 가벼운 수다라고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주소: http://www.facebook.com/iamthewrestler)

 


WManiac: 한국 프로레슬링의 인물들 기획 취재에 추천을 하고 싶은 분들이 있다면?

 

김남석: 이왕표 선생님 입니다. 한국 프로레슬링의 기둥이시고 아직도 현역으로 활동하시는 #1 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실 이왕표 선생님이나 노지심 선생님이나 2년간 저를 프로레슬러로 훈련시키고 제자로 데리고 계신 분들이었는데, 단체를 나올 때 실수한 부분들이 많았습니다. 이자리를 빌어서 사죄를 드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죄송합니다. 해외 선수라면 당연히 타카 미치노쿠 선생님 입니다.

 


WManiac: 한국에서 프로레슬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김남석: 자신을 믿고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자 포부이지만 실제로 실천에 옮기는 사람은 몇 안 됩니다. 저는 프로레슬러가 되고자하는 열정으로 어려운 환경에도 굴복하지 않았고, 일본과 미국에 프로레슬링 유학을 갖다오기도 했으며, 국내에 얼마 없는 프로레슬링 도장을 차리기까지 했습니다.

 

 

하늘을 봐야 별도 땁니다


WManiac: 조금만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면

 

김남석: 프로레슬링 피트 도장에 입문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고, 자신이 정말 WWE 같은 메이저 단체에 가고 싶다 싶으면 또 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일본으로 가서 프로레슬링 연습생이 되는 것이죠. 그곳에서 데뷔를 해서 네임 벨류를 올리면 해외 스카우터 들도 관심을 갖겠고, 최근 WWE도 아시아 시장에 눈을 돌리고 있기 때문에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봅니다. 최근에 NXT에 영입된 팍도 드래곤 게이트 같은 인디 단체에서 스카우트된 선수입니다. 미국 유학을 생각한다면, WWE 트라이 아웃 캠프가 있는데, 비용을 지불하고 기술훈련, 연기력 테스트 등에 합격하면 플로리다에 있는 WWE 퍼포먼스 센터에 입문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전 세계의 프로레슬러의 꿈을 가진 선수들이 동경하는 무대이기 때문에 쉽지는 않을 겁니다.

 

 
프로레슬링 피트 수련생 단체샷

 

WManiac: 김남석 선수의 미래의 꿈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김남석: 일단 회사로써의 목표는 단계별로 흥행을 키우고 싶어요. 처음에는 300명 규모, 그리고 다음은 1000~2000명 규모, 그 다음은 1만~2만 명 규모의 흥행을 열고 싶습니다. 물론 관객석을 매진 시켜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꿈이 있다면, 순수 한국인 WWE 선수를 키워내고 싶습니다. WWE 슈퍼스타의 스승이 되고 싶습니다. 최소 5명 이상이 저의 목표입니다.

 

 

김남석 선수의 단독샷


WManiac: 레슬매니아 여러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김남석: 프로레슬링을 사랑해주신 분들에게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팬들이 있기에 한국에 아직 프로레슬링이 살아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국 프로레슬링도 사랑해주셨으면 합니다. 스포츠 엔터테인먼트의 종류는 다양합니다. PWF는 그 자체의 독특한 스타일도 있고 또 다른 재미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닥터 몬즈” 김남석에게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한호극 tripleh16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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